<한국 무상원조 25년> ①숫자로 보는 ODA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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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유어프렌즈 작성일16-03-31 14:44 조회9,034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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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 주 = 정부의 무상원조 전담기관인 한국국제협력단(KOICA)이 4월 1일 창립 25주년을 맞습니다. 우리나라는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원조를 주는 나라로 탈바꿈한 첫번째 사례입니다. 2014년 기준 한국의 공적원조(ODA) 지원총액은 약 1조9천553억 원으로, 국민총소득(GNI)의 0.13%에 이릅니다. 아직 국제사회가 제시하는 액수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한국형 ODA'라는 호평을 받고 있으며, 한국은 개발도상국의 롤모델로 떠올랐습니다. KOICA 25주년을 맞아 우리나라 ODA의 역사와 우수 사례를 살펴보고 전문가 인터뷰를 통해 바람직한 방향을 모색합니다.>
(성남=연합뉴스) 왕길환 기자 = 'Officail Development Assistance'. 우리말로는 '공적개발원조'(ODA)로 풀이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개발도상국(개도국)의 사회·경제적 발전을 위해 지원되는 공적자금'이라고 ODA를 정의한다.
상업이나 군사적인 목적의 지원은 포함하지 않는다. ODA를 포함한 여러 지원을 흔히 '국제개발협력'이라는 포괄적 의미로 사용한다.
ODA는 개도국에 직접 지원하는 양자원조와 국제기구를 통해 지원하는 다자원조로 분류된다. 전자는 다시 상환 의무가 없는 무상원조와 상환 의무가 있는 유상원조로 구분된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1950∼1960년대 한국은 미국과 유엔개발계획(UNDP)을 중심으로 지원되는 국제사회의 원조를 받았다.
'한강의 기적'을 통해 비약적인 경제성장을 이룬 뒤 1987년 개도국들의 산업 발전과 경제 안정을 지원하고 이들 국가와의 경제협력을 증진하기 위해 한국은 대외경제협력기금(EDCF)을 창설했고, 4년 뒤인 1991년 KOICA를 창립했다. EDCF는 기획재정부가 총괄하는 유상원조이고, KOICA는 외교부 산하 무상원조 기관이다.
한국은 2009년 원조받는 나라로는 세계 최초로 OECD 개발원조위원회(DAC)에 24번째 국가로 가입했다. DAC 가입과 함께 UNDP 서울사무소도 문을 닫으면서 공식적으로 원조 공여국으로 탈바꿈했다.
◇ 우리나라 원조 공여 역사는 KOICA 발자취와 일맥상통
원조를 받는 나라에서 주는 나라로 바뀐 한국의 ODA 역사는 KOICA가 걸어온 발자취와 일맥상통한다.
1991년 KOICA 창립 당시 임직원 수는 264명이었고, 3월 말 현재 1.47배 증가한 389명이다.
창립과 함께 현장 중심의 원조 프로그램을 시행하기 위해 1992년 인도네시아에 첫 해외사무소를 설치했다. 현재 47개국에 48개 사무소와 1개 분사무소를 두고 있다. 성남 대왕판교로에 있는 본부는 2본부, 12부, 5실, 33팀, 2원 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예산은 무려 37배 늘어났다. 처음 174억 원에 불과했던 ODA 자금은 2015년 6천476억 원으로 증가했고, 올해는 2.9%(187억 원) 줄어든 6천289억 원이다. 민간 개발원조 단체와의 글로벌 프로그램 협력 예산 382억 원이 외교부의 보조금 사업으로 이관된 데 따른 것이다.
우리의 ODA 지원액은 OECD DAC 28개 회원국 가운데 16위에 해당한다. DAC 회원국 공적원조 실적에 따르면 2014년 현재 한국은 유무상 통틀어 18억6천만 달러(약 1조9천553억 원)로 전년보다 5.8% 증가했다. 순위는 전년도에 이어 16위를 지켰다. 국민총소득(GNI) 대비 0.13%에 머물고 있다.
최대 원조국 미국이 331억 달러를 지원한 것에 비하면 18분의 1 해당하는 수준이다.
KOICA 창립 당시부터 근무한 정우용 이사는 "사실 한국은 1995년에 세계은행(WB) 차관을 들여오지 않기로 했고, 2000년에 DAC 리스트에서 제외됐다"며 "1991년 당시에는 진정한 공여국이라는 것을 실감할 수 없었다"고 기억했다.
정 이사는 이어 "처음에는 원조 사업 수행 경험이 부족해 미국 국제개발처(USAID)와 일본 국제협력단(JICA) 등 선진 원조기관에 직원들 직무 연수를 많이 보냈고, KOICA의 낮은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봉사단·의료단·태권도 사범 등을 개도국에 파견했다"고 설명했다.
초창기 ODA 사업은 기자재 등 물자 지원 위주로 이뤄졌다. 그러다가 1992년 프로젝트형 사업이 도입됐다. 하지만, 규모가 작고 전문성이 부족해 사업이 취소되거나 지연되는 등 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야만 했다.
현재 KOICA는 프로젝트 사업을 비롯해 글로벌 연수, 해외 봉사단 파견, 인도적 지원, 민관 협력, 국제기구 협력 등의 사업을 펼치고 있다.
1995년 1월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된 프로젝트 사업은 현재 54개국 213건에 달한다. 초기 8개국 8건에 비해 무려 27배 증가했다.
이 사업은 협력 대상국의 경제·사회 발전 및 복지 향상에 기여하기 위해 건물, 시설물 및 기자재 등의 물적 협력 수단과 전문가 파견 및 연수생 초청 등의 인적 협력 수단을 결합해 다년(2∼5년)간 지원하는 것을 말한다.
글로벌 연수사업은 개도국의 정책 입안자, 공무원, 분야별 전문가 등을 국내에 초청해 우리나라의 개발 경험과 기술을 전수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2015년 말 현재 한국을 방문한 연수생은 모두 6만4천296명으로, 1991년 362명에 비해 178배 수준이다.
역시 KOICA 창립 멤버인 김인 전략기획 이사는 "국가 발전에 인적 자원의 개발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고 강조한 뒤 "사람이 미래임을 이미 경험한 우리나라는 개도국에 실질적으로 필요한 교육훈련 프로그램을 제공할 수 있는 나라로 인정받은 것은 물론 최고 수준의 프로그램을 제공해 개도국으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고 자랑했다.
◇ 해외봉사단 4개국 44명 시작, 23년간 49개국 1만 명 파견
지난 20년 동안 민간 협력 사업도 활발하다. KOICA는 ODA 주요 수행 주체로서 시민사회, 기업, 대학, 연구기관 등 민간 부문과 파트너십을 체결해 적극적으로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지역별 실적을 보면 중남미가 41개 사업에 80억여 원, 중동 및 CIS 91개 사업에 324억여 원, 아프리카 311개 사업 580억여 원, 그리고 전체의 68%를 차지하는 아시아가 총 863개 사업에 1천375억 원에 달한다.
KOICA 봉사단의 연원은 1990년 유네스코 한국위원회가 네팔, 스리랑카 등 4개국에 44명을 파견한 것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정 이사는 "1991년 KOICA로 봉사단 업무가 이관되고 첫 모집에 5대1의 경쟁률을 보였는데 봉사단을 홍보하지 않은 점을 고려하면 봉사단에 대한 국민의 관심과 기대가 컸음을 알 수 있다"며 "처음 봉사단의 모토는 '나눔', '섬김'이었다가 지금은 '나눔', '봉사'로 바뀌었다"고 술회했다.
KOICA 봉사단은 1991년 9월 7개국에 37명이 처음 파견됐다. 1997년 7월에는 대학생 해외봉사단을 최초로 파견했고, 2001년에는 IT 봉사단을 20개국에 내보냈다.
한국은 2009년 정부 파견 해외 봉사단을 '월드 프렌즈 코리아'라는 단일 브랜드로 만들고, 예산도 KOICA로 통합했다.
2013년 파견 봉사자 1만 명을 돌파했다. 장·단기를 포함하면 매년 4천800여 명의 봉사자가 개도국에서 활동하는 셈이다. 2016년 2월 기준 해외 봉사자는 49개국에 1천361명이 나가 있다.
2014년 드림 봉사단과 청년중기 봉사단을 파견하기 시작했고, 지난해 강원도 영월에 월드 프렌즈 영월교육원을 개원해 통합교육을 하고 있다.
KOICA는 해외 봉사를 통해 군 복무를 대신하는 국제협력요원 제도를 1999년 처음 실시했지만 2012년 10월 스리랑카에서 활동하다가 낙뢰 사고로 국제협력요원이 숨지자 이듬해 이 제도를 폐지했다.
지난 2월 11개국에 '글로벌 협력 의료진'을 파견하면서 맥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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